경험

갑자기 커튼이 친 것처럼 눈의 반이 안 보인다면 - 망막박리(발견 편)

욘수니 2020. 12. 31. 00:01

갑자기 커튼이 친 것처럼 눈의 반이 안 보인다면 - 망막박리(발견 편)

 

오늘 욘수니는 망막박리에 대해 글을 적어보려 한다.

앞으로 수요일마다 쓸 예정이고 오늘은 다사다난했던 망막박리의 발견 편이다.

2년이 지난 뒤에 쓰는 내용이며, 당시 찍어둔 사진들이 없기 때문에 이번 편에는 관련 사진이 없다.

나의 기억과 지인들과 나눈 카톡 내용들로 적게 될 것 같고, 서류들을 찾게 되면 다음 편에 첨부 예정이다.

 

2018년 7월 말쯤이었다.

아침에 문득 눈에 피로감이 왔고 출근하는 버스 안에서 갑자기 시야가 이상해서

오른쪽 눈을 가리고 보니 왼쪽 눈 코부분 쪽에 검은색으로 마치 커튼이 쳐진 듯 가려져 보였다.

 

한 달 전부터 왼쪽 눈이 갑자기 하루 종일 뿌옇게 보인적이 있었고,

순간적으로 까맣게 보인적이 있었는데 10년 가까이 상반기에는 늘 야근과 철야를 반복하다 보니

눈 관리를 소홀해서, 피곤해서 그런가 보다 했었다.

 

근데 아무리 눈을 비벼도(절대 하지 말아야 할 짓) 인공눈물을 넣어도 없어지지 않는 검은 가림막이

불안해지기 시작했고 회사 앞 안과에 가보기로 했다.

 

한 시간을 기다렸는데 환자가 많은 탓도 있지만 왼쪽 눈에 동공 확대하는 산동 안약을 넣었는데 산동이 잘 되지 않아서

지체가 좀 된 것도 있었다.

 

기본검사를 하고

기다림의 끝에 드디어 진료를 보고 의사가 차분한 듯 다급하게 말했다.

 

"당황하지 마시고, 망막에 문제가 생긴 거 같아요. 지금 바로 대학병원으로 가세요. 사는 지역이 어디시죠?"

 

어안이 벙벙했다.

무슨 소린지 귀에 들어오지 않았고

 

"바로 응급 수술하셔야 해요 이건, 지체되면 실명하세요."

 

응급수술과 실명이란 단어만 계속 맴돌았고 소견서를 받아 나오면서 제일 먼저 엄마에게 전화를 걸었다.

지금 생각하면 엄마에게 그렇게 울면서 전화한 게 미안하다.

 

그리고 회사에 출근 못한다는 전화를 하고 남편에게 알렸다.

남편이 바로 사는 곳에 있는 대학병원에 예약을 해주었고 나는 출근길을 되돌아가면서

불안감에 계속 망막질환이 뭔가 검색을 해보았다.

 

증상이 망막열공과 비슷해 보여서 보니 라식이나 라섹하러 갔다가 발견했다는 사람들도 꽤 있어서

욘수니도 20대 초반에 했던 라섹수술이 문제가 생겼나 싶었고

지인과 메신저로 대화하면서 망막박리를 의심하기 시작했다.


그렇게 걱정하던 중에 사는 곳에 대학병원에 도착하였고 접수 후

또다시 산동 약을 넣고 지루하디 지루한 기다림이 시작되었다.

 

오전에 갔던 작은 안과에서는 아주 급하게 "응급수술 당장 하셔야 한다, 실명한다" 해서 걱정 투성이었는데

막상 큰 대학병원에선 "나 응급 수술해야 된다" 해도 "응, 번호표 뽑고 기다리세요?" 여서

음 뭐 심각하게 생각 안 해도 되는 건가... 하는 바보 같은 기대를 했다.

 

역시나 산동이 잘 안되어서 몇 번이고 산동 약도 넣고

기본적인 검사들과 정밀검사를 했는데 조형제를 투약해 눈 CT도 찍었다.

 

12시쯤에 와서 2시 반쯤 진료가 끝났다.

 

이 대학병원에서 받은 진단명은 망막박리, 포도막염, 백내장.

 

포도막염은 면역력이 떨어져서 감기처럼 오는 안과질환이라고 한다.

나의 경우엔 합병증으로 백내장이 온 것으로 의심되며

 

망막박리는 미숙아였는지 물어보더니 아니라니까 애초에 망막이 약하고 고도근시가 있는데

그런 눈에 잘 온다고 한다.

다른 이유들도 있지만 나에게 발병된 것들은 이러한 이유이다.

 

백내장과 망막박리 수술을 동시에 하길 권유했고 시력상실을 이야기하면서도 나가서 수술 날짜를 잡으라 했다.

어이없게도 수술 가능 날은 1주일 뒤였고 어떻게 할까 고민 중에

검사결과지와 촬영 사진을 받아 지역 내 다른 대학병원에 한번 더 가보기로 결정했다.


이미 검사한 내역을 갖고 가서인지 접수 후 진료까지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진 않았다.

(신기하게도 이곳은 시력검사만 하고 들어갔다.)

 

두 번째 대학병원에서는 다소 황당한 반응의 의사를 만났다. 아래의 말들은 2년이 지난 지금도 생생하게 기억이 난다.

 

"왜 이곳으로 오신 거죠? 거기 그 교수님 백내장 잘하시는 분이신데"

"환자분이 라섹을 하셔서 백내장 수술하면 시력교정이 어려우세요."

"시력 오차범위를 줄여주는 기계가 있는데, 저희 병원엔 없습니다."

"아 거기서 그냥 하시지"

"시력교정이 어렵지만 그래도 저희 병원에서 하시겠다면 해드릴 순 있어요."

"해드릴 순 있는데 먼저 다녀온 그 병원에 그 교수님 정말 잘하시는 분이시라는 것만 말씀드릴게요."

 

잔뜩 피로해진 눈과 고질병인 편두통까지 괴롭던 와중에 정말 이 의사 뭔가 싶었다.

그리고 나는 반문했다.

 

"그래서 선생님. 제가 하겠다면 해주실 수 있다는 거예요? 저 그리고 백내장 말고 망막박리가 더 응급인데요?"

 

이에 대한 답변은 환자분이 결정하셔라 였다.

글자로만 적어서 그렇지 정말 자신감 없는 목소리와 볼펜을 계속해서 만지작거리는 그 의사를 보고

내 눈을 맡길 자신이 없어 "다른 데 가겠습니다. 제가 제출한 자료는 돌려주세요."하고 나왔고

 

서러움에 화장실에서 울다가 일단 집으로 가려고 택시를 탔다.

가족들에게 번갈아가며 전화가 왔고 "서울에 이 병원이 좋다더라, 가봐라"

해서 해당 병원에 전화를 해봤는데 가는 중에 진료 접수가 끝날 것 같아 일단 포기하고 창밖을 보던 중

 

내 통화 내용을 들은 택시기사분이 '안과 전문병원'을 한번 가보는 게 어떻냐며

마침 본인 가족 중에 지역 내 안과 전문병원에서 망막수술을 한 적이 있다고 했다.

나는 행선지를 그 안과 전문병원으로 바꿔 도착했다.

(감사하게도 가는 내내 나를 안심시켜주시는 말을 해주셨다. 따뜻한 세상)


소견서와 검사결과지를 들고 접수대에 가니 내가 마지막 접수자였던 거 같다.

이곳은 재검사를 요했고, 또다시 산동검사와 기본검사, 정밀검사를 한 후에 진료실 앞에서 대기하고 있으니

어느새 나만 남았고 눈은 안약들로 인해 더 힘이 들어서인지

오전보다 검은 커튼이 더 쳐져있는 느낌이었다. 떨림도 사라지고 털릴 것도 없다는 심정으로 기다림 끝에

 

세 번째 병원에서도 열공망막박리, 포도막염, 백내장 진단을 받았고

 

이 병원에서는 포도막염은 약물치료, 백내장은 아직 수술 안 해도 될 단계(나이가 어려 권유하지 않음),

망막박리는 진행이 꽤 많이 되어서 공막 돌륭술을 하자고 했다.(초기엔 레이저로도 시술 가능)

 

따뜻한 의사 선생님이었다.

 

첫 번째 대학병원과 협력병원이어서 처음엔 이 의사분도 왜 그곳에서 하지 않았는지,

실력 있는 교수님이었고 심각하단 걸 알았으면 수술 날짜를 잡는 게 최우선이었어야 했다며 혼을 냈다.

나는 왠지 백내장까지 다 수술해야 한다는 게 신뢰가 가지 않았고 서울에 있는 병원에 가려다 여기도 한번 와봤다 했더니

"다른데 가보셔도 돼요 저희 병원에서 찍은 것들도 CD로 드립니다. 환자분 마음 편한 곳에서 하시는 게 제일 중요해요"라는 말에 나는 왠지 여기서 해야 마음이 편할 것 같아서 수술을 결정했다.

 

그런 나에게 그 의사 선생님은

"너무 걱정하지 말아요. 사실 너무 진행이 많이 되었고 어려운 수술이 될 거 같지만 최선을 다할게요."

 

 

그 말에 마음이 완전히 놓였다. 실명이 될 수도 있는 심각한 상황이었는데도 불구하고 말이다.

서울에 있는 병원? 안 가고 여기서 받는 게 마음이 편할 거 같다! 믿음이 가는 자신감을 가지셨다!

그렇게 바로 4일 뒤로(주말 껴있었음) 수술 날짜를 정하고 밖에서 대기 중인데 내가 마지막 진료였던 관계로

담당 의사 선생님이 진료실을 정리하고 나오면서 또 너무 걱정하지 말라며 수술 날까지 눈 푹 쉬게 해 주라며 가셨다.

 

그렇게 나는 회사에 당분간 사정이 이래서 못 나간다는 말을 하고, 다행히 바쁜 기간이 끝나 쉬면서 부분적 재택근무를

시작하였다.

 

(다음 편에 계속---)